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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MDRT, 부르나이 MPC수상 탈북여성

한국인 직원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탈북자 출신 매니저

장진성2013.01.15 23:11:03

(장진성의 인물 초대석)

 

한 명의 자랑스런 탈북정착 스타 김순희

가진 것이 없으니 무서운 게 없었다


한국 사람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미국 보험사 매니저로 성공한 탈북자가 있다. 보험업계 특성상 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선 학연, 지연, 혈연이 그 어떤 직종보다 필요한 직업이 바로 보험이다. 그런데 김순희 씨는 탈북자라는 최악의 환경을 극복하고 현재 억대 연봉을 받으며 외국계보험회사인 매트라이프생명보험(주) 부산지점 에서 다른 설계사들을 교육하고 관리하는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2008년 생명보험 판매 명예의 전당 MDRT 수상

브 루 나 이 2008년 사내 MPC 수상

MDRT (Million Dollar Round Table)의 약자로서 보험금 백만 달러 이상을 달성한 사람만이 받는 상으로서 전 세계에 걸쳐 생명보험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 중 단지 소수만이 MDRT회원자격을 취득하고 있다.




그녀의 별명은 ‘불도저’라고 한다. 그녀를 만나본 모든 사람은 그녀를 열정의 화신이라고 말한다. 그녀 자신도 뭐든 시작을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라고 했다. 과연 어떻게 탈북자 출신인 그녀가 억대연봉의 보험매니저로 성공할 수 있었을까?


-자신에 대한 간략한 소개 좀 부탁합니다.


저는 한국으로 온 지 10년째 되고 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기동예술선전대에서 노래와 공연으로 선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보시던 자본주의 책을 보며 자란 탓인지 어려서부터 우유와 버터가 있는 곳, 즉 자유가 있는 곳에서 살 것이라는 자본주의 세상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컸습니다.


결국, 10년 전 동생들과 아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왔지만 1년 동안은 너무나 힘들어서 자살도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왜냐면 남한의 환경이 제 예상보다 너무나 달랐고, 제 아이는 어리고, 의지할 곳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걸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경리 일을 시작하며 버텼습니다.


-처음부터 보험 일을 한 게 아니라면 어떤 계기로 보험 일을 하게 됐나?


처음 경리 일을 1년 정도 한 후 자신감이 생겨서 나만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에 요식업을 시작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인지 장사가 잘됐습니다. 그랬더니 더 큰 꿈과 욕심이 생기더군요. 새로운 분야에서 자기계발을 하고 싶다는 도전욕구가 또다시 생길 즈음, 마침 저를 눈여겨보시던 단골손님 한 분이 저를 보고 “이런 일을 할 분 같지 않다. 다른 적성에 맞는 일을 한다 해도 분명히 성공할 스타일이다”며 힘을 주시더군요.


마침 그때 제 가게를 원하던 분도 있고 해서 가게를 넘기고 또 다른 자기 계발을 위해 리더쉽을 배우는 학원에 등록하였습니다. 그곳에서 보험회사 직원분을 만났는데 제가 그 일에 관심을 보이자 저보고 “이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라며 핀잔을 주시더군요. 전 속으로 “나는 아무나가 아니다.”라고 스스로 생각했어요.


이 세상 무엇과도 부딪혀 보고 싶었다

탈북자는 목숨 걸고 왔기에 생계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탈북자라는 사실 때문에 무시를 당한 건가?


물론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분 스스로의 자신감이 대단했어요. 그러다 학원졸업식 날 발표를 하는데 제가 마지막 순서였습니다. 남들은 축하한다며 지인들이 꽃다발도 들고 왔는데 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보험회사에서 그분을 축하하기 위해 나오신 임원분이 저를 눈여겨보셨는지 나중에 연락이 왔더라고요. 한번 일해 보라고요.


원래 입사하려면 4년제 대학을 나오고 사회적 경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는데 저를 특별채용하신 거죠. 그런데 주위 시선들은 제가 ‘한 두 달 버티다 말겠지.’ 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 입사까지는 운이 좋은 편이신데 어떻게 힘든 세월을 견디고 이 자리까지 왔는가?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도저히 못 할 거에요. 그 당시 몹시 추운 겨울이었는데 가방을 들고 회사를 나오니 어디를 가야 할지 몰라 막막했습니다. 마치 탈북 당시 아무도 모르는 기차역에 내던져진 기분이었죠. 입사 후 1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일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 때문에 더 힘들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분들은 전부 재력이 있는 분들이라 주눅이 들어서 말도 제대로 안 나오더라고요. 그 당시 제 첫 손님이 학원에서 알게 된 사장님이었는데 나중에 제가 왜 말도 잘 못하던 저랑 계약하셨느냐고 물어보니, 제가 하던 말은 못 알아들었지만, 당신의 열정을 보고 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내가 가진 건 열정과 꿈. 내 꿈의 끝은 없다.

통일 후에도 일조하는 일을 하고 싶다


-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하셨는데 그 당시 누가 가장 먼저 떠올랐나?


솔직히 저를 믿어주신 고객분들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그분들 덕분에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거니까요. 제 일은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입니다. 그래서 항상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힘을 주는 사랑하는 내 가족과 같이 일하는 동료입니다. 지금도 생계에 대한 책임감은 제가 일을 하는데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 너무 일에만 빠져 사는 건 아닌가? 보험 일은 체력이 좋아야 하는데 취미는 무엇인가?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하는데 주말에는 출근이 늦어서 이틀은 그 시간에 집 근처 산에 오릅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보단 감수성이 풍부해서 아코디언을 시간 날 때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음악이 제 친구입니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설교를 재미있게 하는 교회를 찾아다녀요. 종교문제만 빼고 들으면 사는데 정신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거든요.


꿈 너머의 꿈, 계속되는 도전

사람들이 목표를 이룬 후에는 꿈이 없어진다.


-후배 탈북자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


제가 처음 한국사회에 입문하며 느낀 것이 바로 말투를 바꿔야 성공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만큼 한국은 아직 차별의식이 남아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용하는 북한식 용어와 억양으로는 내가 원하는 꿈을 이루는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시로 말투 바꾸기 연습을 하였습니다. 스피치 학원에도 다녔고요.


모든 탈북자가 말투를 바꿀 필요는 없겠지만, 한국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바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직업을 택하던 가치 없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자기 일에 대해서 성공할 것이라는 자신감과 확신을 하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이 한번 정한 꿈이 실현되면 그 뒤에 나태해지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항상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위해 열정을 가지고 살다 보니 어느샌가 제가 꾼 꿈이 현실이 되더군요. 성공의 비법은 따로 없는 것 같아요. 열심히 살다 보면 다른 건 저절로 따라오더라고요.


그녀는 마지막에 자신은 북한과 남한을 모두 살아보았기에 앞으로의 새로운 꿈이 통일된 조국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어떤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선으로 남북한이 문화적 동질성을 가질 수 있는데 일조하고 싶다는 것이다.


불도저 같은 그녀도 가장 힘들었던 것이 바로 남한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가 한국에 정착하며 얼마나 문화적으로 많이 힘들었는지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현재 이 자리에 올라선 그녀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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