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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36] 자유 찾아 삼만리

탈북여성작가 지현아 씨의 수기

염미화2012.08.02 01:08:29

8장. 북한의 감방

 

호실장의 기구한 사연

 

 

할머니가 물어봤다.

 

“호실장은 어떻게 되어 여기 오셨수?”

 

“저요? 사연이 많답니다. 휴~”

 

한숨을 쉬며 호실장은 창살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호실장은 부모들이 병으로 다 돌아가고 남편마저 굶어 죽었다. 7살, 5살 된 아이들과 함께 살자니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거기에 또 남동생까지 있어 생활하기가 너무도 힘들었다.

 

생각다 못해 중국으로 가서 며칠 일을 해 쌀을 가지고 올 생각에 아이들을 동생에게 맡기고 중국으로 도강했다. 배낭을 메고 도착한 집은 다름 아닌 홀아비 집이었다. 처음엔 도강하느라 흠뻑 젖은 옷도 옷이지만 중국 공안에 걸릴까봐 급한 나머지 그 집으로 들어가긴 했는데 왠지 불안한 생각에 다시 나오려 했단다.

 

“어딜 가오? 여기에 그냥 있지. 나가면 공안들이 욱실 될 텐데….”

 

호실장은 그냥 주저앉았다. 그날 저녁 홀아비는 호실장을 가만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로 호실장은 팔려갔다. 7살 아들과 5살 여자아이를 남겨둔 채 그만 멀고 먼 산동성에 있는 나이가 엄청 많은 남자한테 팔려가고 말았다.

 

자식과 동생을 생각하며 참고 따라가서는 호실장은 그곳에서 탈출하였고 심양에서 좋은 한국 사장님을 만나 옷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일하면서 여러 가지를 보고 들으며 많은 걸 깨닫게 되었고 그동안 북한에서 헛되게 속아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위성을 통해 한국 TV를 보면서 한국의 생활도 알게 되었고 자유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드디어 결심을 하고 자식들과 남동생을 데려와 한국으로 가려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사람을 집에 보내니 험악한 소식이 전해왔다.

 

아이들은 굶어 죽고 동생만 겨우 살아 있다는 것이었는데 동생은 중국으로 오지 않겠다고 했단다. 아이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통곡하며 북한으로 직접 들어갔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남동생이라도 데리고 오려고 했던 것이었다. 남동생은 거미줄 가득한 집에 혼자 누워 있었다. 호실장과 남동생은 붙들고 하염없이 울었다. 호실장은 남동생에게 자신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중국으로 가자고 했다. 중국에 가서 자유로이 인간답게 살자고 했다. 신중하게 생각하던 남동생은 쾌히 승낙하고 밤에 두만강으로 갔다. 장마로 인해 두만강 물은 불어 있고 물살이 셌다.

 

하지만 그 강을 건너야만 자유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기에 동생과 손을 꼭 잡고 두만강에 몸을 던졌다. 두만강의 물살이 얼마나 세었던지 강바닥의 큰 돌들까지 굴러갈 정도였다. 목까지 올라오는 강 한가운데서 몸이 허약한 동생은 어쩔 줄 몰랐다.

 

그는 동생에게 손을 꼭 잡으라고, 아니면 죽는다고 하며 동생을 각성시켰다. 한 걸음 한걸음 걸어가도 물은 점점 깊어졌고 물살에 견디기도 더욱 어려웠다. 그러나 호실장은 동생의 손을 놓지 않았다.

 

이제 조금만 가면 얕은 물 쪽으로 갈 수가 있었다. 이때 물살에 휩쓸린 동생이 그만 누나의 손을 놓고 말았다. 순간 그녀는 동생을 구하러 허겁지겁 달려갔는데 그다음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호실장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한낮이었다. 물살에 밀려 중국 쪽 두만강 기슭에 누워 있었다. 자식들과 동생마저 호실장 곁을 떠나고 홀로 남게 되었다. 바위에 걸터앉은 그는 두만강을 향해 동생의 이름을 연속 부르며 누나가 잘못했다고 눈물 흘리며 외쳐댔다.

 

혼자가 된 그는 한국으로 갈 결심을 하고 심양으로 갔다. 몇 달 동안 한국으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하던 중, 2월에 끝내 중국 공안에 붙잡혀 북한으로 북송되었던 것이었다.

 

“사람이 살아봐야 얼만큼이나 살까요? 우리는 왜 그 짧은 시간들을 자유로이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도대체 그 자유가 뭐기에 사람들을 그토록 비참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은 자식들과 남동생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져요. 가슴이, 가슴이…. 이 가슴이 터져요….”

 

호실장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허이구…. 이게 무슨 일이라오. 전쟁도 아니고 전염병도 아니고 굶주림 때문에 죽어나가다니…. 그 눔의 먹을 것이 사람을 다 죽이는구먼….”

 

할머니의 말이 창밖에 내리는 비처럼 쓸쓸했다. 나도 그리웠다. 어릴 적 뛰어놀며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그 시절들이 그리웠다. 잠시 후 총무가 문을 열고 내가 거주했던 지역 사람들은 모두 나오라고 했다. 갑자기 뭔 일인지 어리둥절했다.

 

영문도 모르고 나가는데 호실 사람들이 좋겠다고 했다. 내가 사는 군에서 데리러 온 것 같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복도에서 줄을 지어 서 있는 우리를 향해 선생이 한 명, 한 명 나이와 이름을 물었다.

 

“군에서 너희들을 데리러 왔다. 얼른 준비하고 운동장으로 나와!”

 

그는 소리치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우리는 정말 기뻤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그 집결소를 나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호실 사람들을 생각하니 안쓰러웠다.

 

“나가서 잘 살아.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만 하니? 살아서 만나자!”

 

호실장이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있었다.

 

“네~ 호실장님도요. 다들 안녕히 계세요. 그리고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랄게요!”

 

짧은 인사지만 진심이 어려 있었다.

 

“그래, 잘 가요~”

 

할머니도 나의 손을 잡으며 가는 길을 배웅해 주었다. 그리하여 지옥 같았던 함경북도 청진 집결소를 나오게 되었다.

 

내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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