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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도와드릴까요?
김하늘2012.01.01 21:08:23
뉴포커스가 세 번째로 취재하는 성공정착인은 현재 한국의 국가대표 리듬체조 단체팀을 지도하는 이경희라는 탈북여성의 코치이다. 남남북녀라는 말이 있듯이 멀리에서도 대뜸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그의 미모는 남달랐다. 북한 최고위층들이 모여 산다는 평양시 보통강구역 신원동에서 살 정도로 그의 아버지는 북한 최고위층이었다.
그 출신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녀가 아시아 리듬체조 선수들 중 국제대회 수상경력이 가장 많았다는 사실이다. 우선 그녀의 북한 국내 성적은 단연 1위였다. 1989년부터 1992까지 2월백두산상경기, 4월 만경대상경기, 6월보천보횟불상경기, 10월 공화국선수권대회들에서 개인종합1위, 종목별1위를 휩쓸었다.
국제 경기들에서도 그녀의 존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1989, 9, 세계선수권대회 (유고슬라비아) 1990, 8, 4대륙선수권대회(일본 도쿄)에서 개인종합3위, 볼1위를 했다. 또한 1990, 10, 월드컵대회 (벨기에) 1991, 3-4월 원정경기, (모스크바, 리가, 불가리아, 프랑스) 1991, 7, 16회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영국 셰필드)에서 각각 개인종합1위, 볼1위, 줄1위, 곤봉2위를 했다.
그 뿐이 아니다. 1991. 9, 세계대회(아테네) 1992. 3-4 원정경기 (러시아, 불가리아, 프랑스) 1992. 7-9월 25회올림픽 (에스빠냐 바로쎌로나) 1993. 9, 세계선수권대회 (스페인 마드리드)들에서도 우승했고, 1991년 영국 셰필드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 리듬체조에서는 개인종합 우승을 포함해 3관왕을 차지하여 북한에서 최연소 나이로 공화국 공훈체육인이 되기도 했다.

북한에선 리듬체조를 예술체조라고 한다. 스포츠의 발레리나라고 할 수 있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이경희 코치와 함께 선수생활을 하던 동료들 중에는 간혹 김정일 기쁨조로 발탁되는 여성들도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서 열린 대회에 참가하면서 바깥 세계에 눈을 뜨게 된 이경희 코치는 그러한 북한의 현실에 누구보다 혐오감을 갖게 됐고, 마침내 2007, 6, 남한으로 오게 됐다.
2007년 11월부터 대한민국 체조협회 순회코치 자격으로 리듬체조 대표팀을 두루 지도하다가 2011년 1월부터는 아예 단체팀 전담 코치가 됐다고 한다. 이경희 코치는 무엇이 가장 소원인가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북한에서 못 다 이룬 자기의 꿈을 대신 제자들의 현실에서 보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뉴포커스가 세 번째로 소개하는 정착성공인 이경희, 그녀의 꿈이 꼭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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